본문 바로가기

깊숙한 곳 그곳 부터

밤 열한시






밤 열한시.
참 좋은시간이야.
오늘 해야할 일을 할 만큼 했으니
마음을 좀 놓아볼까 하는시간.
오늘 해야할일을 하나도 못했으니
밤을 새워볼까도 하는 시간

밤 열한시.
어떻게 해야하나
종일 뒤척거리던 생각들을
차곡차곡 접어 서랍속에 넣어도 괜찮은 시간.
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던 마음도
한쪽으로 밀쳐두고
밤 속으로 숨어들갈 수 있는 시간.

밤 열한시.
그래, 그 말은 하지않길 잘했어, 라거나
그래, 그 전화는 걸지 않길 잘했어, 라면서
하지 못한 모든 것들에게
그럴 듯한 핑계를 대줄 수 있는 시간.

밤 열한시.
누군가 불쑥 이유 없는 이유를 대며
조금 덜 외롭게 해줄 수 있는냐고 물어도
이미 늦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시간.
누군가에게 불쑥 이유 없는 이유를 대며
조금 덜 외롭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묻기에는
너무 늦은시간.

밤 열한시.
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
어떤 기대를 품어도 괜찮은 시간.
일어나지 않은 모든 일들에 대해
그저 포기하기에도 괜찮은 시간.
의미를 저울에 달아보거나
마음을 밀치고 지우는 일도 무의미해 지는 시간.

밤 열한시.
내 삶의 얼룩들을 지우개로 지우면
그대로 밤이 될 것도 같은시간.
술을 마시면 취할 것도 같은시간.
너를 부르면 올 것도 같은시간.
그러나 그런 대로 참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시간.

밤 열한시.
하루가 다 지나고 또 다른 하루는 멀리있는 시간.
그리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사랑도 멈추고
모든걸 멈출 수 있는 시간.

참 좋은시간이야.
밤 열한시.
나의 마음이 불빛으로 번져가도
너의 마음이 불빛으로 흩어져도
어쩔 수 없이 괜찮은 시간.




'깊숙한 곳 그곳 부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to you  (0) 2012.05.18
불쌍한 너와 나  (0) 2012.05.04
너를 매일 닦는다.  (0) 2012.04.04
그까짓거, 봄  (0) 2012.03.21
저 멀리,  (0) 2012.03.01